사회주의 선전 포스터에서 농민은 도시 노동자 못지않게 중요한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특히 집단 농장 체제와 국가 중심의 농업 계획 경제를 정당화하는 데 있어 농민 이미지는 ‘이상적인 사회 구조’를 시각화하는 핵심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농민이 포스터에서 어떻게 묘사되었고, 그 이미지에 어떤 정치적 질서와 사회구조가 반영되었는지를 분석합니다.
밝은 얼굴의 농민: 생산성과 순응의 상징
포스터 속 농민은 언제나 활기차고 건강해 보이며, 노동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갈색 피부에 튼튼한 팔, 손에는 곡괭이 대신 수확물이나 깃발이 들려 있고, 배경에는 드넓은 밭이나 트랙터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이미지들은 ‘농업은 낙후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발전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전략입니다. 특히 개인 농보다 집단 농장이 강조되며, 포스터는 ‘협력’과 ‘집단적 생산’을 이상화합니다. 이는 단지 농민의 삶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사회 조직의 표본으로 농촌을 묘사하는 시각 전략입니다. 농민은 자연과 노동을 연결하는 주체이자, 체제에 순응하는 이상적 시민으로 제시됩니다.
농민-노동자 연대 이미지: 계급 통합의 시각화
사회주의 체제는 도시 노동자와 농촌 농민 간의 단결을 강조했습니다. 포스터에서는 종종 노동자와 농민이 함께 등장하며, 손을 맞잡거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농민 동맹’이라는 이념적 구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며, 계급 간 갈등이 아닌 연대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미지 구성은 사회 구조 내 갈등이나 차이를 지우고, 모든 계층이 하나의 목표(공산주의 건설)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허구적 통합을 연출합니다. 실제 농민의 생활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터는 그 현실을 배제한 채 단결된 계급 구도를 시각화함으로써 체제의 이상적 질서를 전시합니다.
여성 농민과 가족 이미지: 성별 역할의 이상화
많은 농민 포스터에서는 여성의 이미지가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어린아이를 업고 밭일을 하거나, 수확물을 들고 밝게 웃는 여성은 ‘모성’과 ‘생산’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이는 여성에게 가족의 돌봄과 사회적 생산이라는 이중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요구를 반영합니다. 여성 농민은 단순한 농업 종사자가 아니라, 국가의 인구 재생산과 경제 생산의 핵심 주체로 이상화됩니다. 이와 함께 아이를 안은 여성과 곡식을 든 남성이 나란히 서 있는 이미지들은 ‘사회주의 가족’의 전형적 구조를 드러냅니다. 이는 국가가 설정한 이상적 가족-사회 구조가 시각적으로 재현된 결과이며, 포스터 한 장을 통해 사회 전체의 가치 체계를 은연중에 주입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농민 포스터는 단순한 직업군의 묘사를 넘어, 사회주의 체제가 꿈꾸는 이상적 계급 질서와 가족 구조, 경제 조직의 모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도구였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대중에게 농촌을 낙관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체제가 설계한 사회 구조를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은밀한 교육 장치였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농민 이미지가 실제 농촌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